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은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서 글로벌 산업 질서의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특히 그의 보호무역 중심 정책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들과의 무역 규범, 협정, 정책을 뒤흔들며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촉진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로서, 트럼프 정책 이전과 이후의 산업별 구조 및 전략이 극명하게 달라졌습니다. 본문에서는 반도체, 자동차, 철강/중공업 세 가지 산업을 중심으로 변화 양상을 구체적으로 비교하고, 향후 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전환점: 기술패권 전쟁 속 양날의 검
트럼프 집권 이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중국 양국 시장에서 고르게 성과를 내며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고, 미국은 첨단 기술 협력국, 중국은 대규모 수요국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미중 무역전쟁을 본격화하고, 특히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화웨이 및 ZTE 등 주요 IT기업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양국 사이에서 민감한 줄타기를 해야 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외국 기업에 현지 투자를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이에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 규모의 텍사스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SK하이닉스는 R&D 센터를 포함한 북미 인프라 확대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생산비 증가, 공급망 복잡성 증가, 중국 시장 의존도 감소에 따른 매출 손실이라는 이중의 부담이 존재했습니다. 트럼프 정책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새로운 변수와, 기술 자립을 위한 중장기 과제를 동시에 던졌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전략 변화: 압박과 적응의 반복
트럼프 이전의 한국 자동차 산업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 속에서 미국 시장 점유율을 확장해가고 있었습니다. 한미 FTA를 통한 관세 혜택, 엔진 성능 개선, 디자인 고급화 전략으로 현대차·기아차는 브랜드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었고, 미국 남동부에 생산공장을 운영하면서 현지화 전략도 일부 진행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수입 자동차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한국산 자동차에 최대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무역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정치적 카드였지만, 자동차 업계에는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현대차는 앨라배마 공장의 증설을 발표하고, 기아차도 미국 내 고용 확대를 약속하는 등 정치적 리스크 회피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관세 회피에는 성공했지만, 생산비 증가, 국내 일자리 이탈, 공급망 복잡화라는 부작용도 야기했습니다. 또한 NAFTA를 대체한 USMCA는 북미산 부품 비율을 62.5%에서 75%로 상향 조정했고, 이는 부품사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철강 및 중공업의 이중 과제: 규제의 그늘과 기회의 빛
철강 산업은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의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분야입니다. 2018년, 트럼프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일괄 부과했고, 한국은 예외 대신 수출량 제한(쿼터제)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 조치는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에 수출 물량 감소라는 직접적 타격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의 철강사들은 고급 제품군, 예컨대 자동차용 초고장력강, LNG 저장탱크용 극저온강, 에너지용 고합금강 등으로 수출 방향을 전환하며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중공업 부문에서는 보다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미국은 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 셰일가스 개발 등을 통해 플랜트, 압축기, 펌프류 장비 수요를 늘렸고, 이는 한국 조선·플랜트 기업들에게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Buy American’ 조항, 현지 고용 조건, 미국산 자재 사용 의무 등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상당수 기업들이 현지 파트너와의 합작, 법인 설립, 현지화 전략 강화 등으로 대응해야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은 단순한 관세 부과나 협정 변경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글로벌 산업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접근을 시도했고, 한국 산업은 이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성장의 방향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패권 전쟁 속에서 생존과 자율성 확보라는 과제를 안았고, 자동차 산업은 생산기지 재편과 기술전환에 착수했으며, 철강/중공업은 수출 제약 속에서도 고부가가치 전략으로 체질을 개선했습니다.